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규슈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총 투자 규모는 8000억엔(약 8조5600억원)인데 이 중 최대 절반을 일본 정부가 보조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사진) 내각이 반도체 공급망 안정을 비롯한 경제안보를 주요 전략으로 내세운 가운데 대만과의 협력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이번 TSMC에 대한 지원은 이전에 없던 큰 규모여서 일부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TSMC가 일본 정부와 소니 등의 지원을 받아 구마모토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방침을 굳혔다고 10일 보도했다.
공장 위치는 기쿠요마치의 소니 이미지센서 공장 인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총 투자 규모는 8000억엔가량인데 이 중 최대 절반을 일본 정부가 보조하고 소니는 소액 출자를 검토하며 공장용지 마련 등에 협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자동차 부품업체인 덴소도 차량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TSMC 구마모토 공장에 전용 설비를 두는 등의 형태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장은 2024년 시스템반도체 생산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으면 특히 이미지센서에 들어가는 칩을 만들어 소니에 납품할 것으로 보인다. 소니는 이미지센서의 데이터를 연산하는 반도체를 TSMC 등에서 위탁생산해 왔다. 이 밖에 이 공장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등도 생산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프로젝트로 구축되는 생산라인은 회로 선폭 20나노미터(㎚, 1㎚=10억분의 1m)대 공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TSMC나 삼성전자가 앞서가고 있는 파운드리 첨단기술 수준이 10㎚ 이하의 미세공정인 점을 감안할 때 구마모토 공장의 기술은 다소 뒤처진 세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세공정을 통해 회로 선폭을 줄일수록 반도체의 효율·성능을 높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미세공정 등에서 한국·대만에 뒤져 있는 가운데 앞선 기술을 보유한 공장을 유치해 자국 반도체 산업에 활력소가 될 가능성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55%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삼성전자(17%)가 따르고 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이미지센서 시장에서는 소니가 42%로 1위, 삼성전자가 25%로 2위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도 소니의 이미지센서 관련 연산칩은 TSMC가 생산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과 경쟁관계에 있는 소니·TSMC가 서로 협력 관계를 확대해 공급망을 강화하는 것은 파운드리·이미지센서에서 추격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좋은 흐름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작년 말부터 차량용 칩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 변수가 확대되면서 일본을 비롯한 유럽·미국 등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생산라인 유치 등에 힘을 쏟아왔다.
일본은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 검토 회의'를 가동하는 등 경제안보 차원에서 생산기반을 정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일 취임한 기시다 총리는 경제안보 각료를 신설하며 "전략기술이나 물자의 확보,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진행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반도체의 공급망 확보가 경제안보 각료·조직의 중요한 임무가 될 것으로 보여 이번 프로젝트가 기시다 내각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특히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TSMC에 공을 들여왔고 이에 따라 협력이 확대되는 추세다. TSMC는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 반도체 연구개발 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여기에 약 190억엔을 지원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31일로 예상되는 중의원 선거 이후에 편성할 2021년 추가경정예산안에 TSMC 구마모토 공장 건설 지원 비용을 넣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 이 같은 거액이 외국 기업에 지원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세금이 특정 기업에 사용된다'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도쿄 = 김규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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