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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기업 유형별로 따져보니···애플·현대차 비슷한 듯 다르네
2021-02-18 14:53:48 

팬덤에도 ‘급’이 있다. 넓이(팬덤 규모)와 깊이(충성도)에 따라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팬덤은 평소에는 기업에 든든한 존재가 되지만, 자칫하면 강력한 위협이 되기도 한다.

▶넓고 깊은 팬덤

▷논란에도 승승장구 애플·테슬라

넓고 깊은 팬덤은 다양한 연령대, 거주 지역·국가, 성별 등을 아우르고 충성도도 높은 강력한 팬덤이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완벽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돼도 구매를 중단하지 않는다. 덕분에 기업은 꾸준히 실적을 내고 이를 기반으로 연구개발(R&D) 등에 투자할 수 있다. 김지헌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열성 팬의 믿음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부정적인 사안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만큼 강력하다”고 단언한다.

이런 팬덤은 주로 ‘고관여 상품(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소비자가 구매 전 고민을 많이 하는 상품)’에서 나타난다. IT 기기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이 해당한다. 애플과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 초기 모델을 선보이며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했다. 이후 아이패드(2010년), 애플워치(2015년), 에어팟(2016년)을 내놓으며 IT 기기 트렌드를 선도했다. 하드웨어뿐인가. 앱스토어, 애플뮤직, 애플TV 등 콘텐츠를 소비하고 감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제공하며 애플만의 생태계를 구축, 강력한 팬덤을 확보했다. 덕분에 소비자에게 불리한 정책을 펼친다는 논란에 수차례 휩싸여도 매년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테슬라 역시 탄탄한 팬덤을 보유했다. 테슬라 전기차는 끊임없이 품질 논란에 시달려왔다. 단차 문제가 대표적이다. 소비자 사이에서 ‘단차가 있어야 테슬라 정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테슬라 차량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단차는 자동차 외장 부품이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 생긴 틈을 가리킨다. 단차가 있으면 미관상 좋지 않고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거나 빠르게 달릴 때 바람 소리가 들릴 수 있다. 도색이나 내장재 마감 등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도 많다. 테슬라는 지난해 시장조사 업체 JD파워가 진행한 ‘2020 신차품질조사’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조사에서 테슬라 100대당 불만 건수는 250건으로 집계됐다. 업계 평균 건수 166건을 크게 웃돈다.

안전성 논란도 이어진다. 최근 테슬라는 자동차 15만8000여대 리콜을 결정했다. 미디어 제어 장치 결함으로 인해 자동차 내부에 장착된 터치스크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테슬라는 차 내부에 물리적인 버튼이 거의 없다. 기능 대부분은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한다. 터치스크린이 오작동하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테슬라 자동차는 국내외 시장에서 여전히 잘나간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만 1만1826대를 팔아치웠다. 2019년(2430대)보다 판매량이 5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약 20%로 전기차 업체 중 가장 높다. 자동차 출고 대수는 약 50만대로 2019년 36만7500대에 비해 36% 늘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새로운 목표나 가능성, 철학을 제시하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를 현실화하려는 시도를 이어가는 기업에 열광한다. 이들은 기업이 치명적인 잘못을 하지 않는 한 지지를 이어간다. 단 열성 팬덤을 유지하려면 철학에 부합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애플이나 테슬라는 혁신을 내세워 팬덤을 확보한 만큼 새로운 영역에 꾸준히 도전해야 팬덤을 잃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좁고 얕은 팬덤

▷반짝 인기 끈 ‘깡’ ‘허니버터칩’

어떤 팬덤은 좁고 얕다. 일부 소비자 사이에서 형성돼 단기간 반짝하고 흩어진다. 생활 소비재나 간단하게 즐기는 콘텐츠 등 ‘저관여 상품’에서 주로 발견된다.

좁고 얕은 팬덤은 일시적으로는 기업·상품·콘텐츠 인지도를 높이거나 실적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롱런하지는 못한다. ‘깡’과 ‘허니버터칩’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깡은 가수 비가 부른 노래다. 2017년 발표됐지만 당시에는 트렌드에 맞지 않는 가사와 춤, 의상 때문에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과 패러디 영상 등이 화제가 되며 ‘역주행(뒤늦게 유행)’했다. 국내 최대 음원 서비스 멜론에서 집계하는 인기 차트 100위에 재진입했고 유튜브에 게시된 뮤직비디오는 지난해 5월 조회 수 1000만회를 넘어섰다. ‘1일 1깡(하루 한 번 깡을 본다)’ ‘식후깡(식사 후에 깡을 본다)’과 같은 유행어도 생겼다. 덕분에 비는 인기 예능에 출연하고 유재석, 이효리와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농심 과자 새우깡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깡 효과’에 힘입어 새우깡과 감자깡, 양파깡 등 이름에 ‘깡’이 들어가는 스낵 5종류 연간 매출액은 지난해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깡 열풍은 최근 들어 수그러들었다. 멜론 인기 차트에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소비자 관심은 나훈아의 테스형 등 다른 콘텐츠로 옮겨갔다.

허니버터칩 역시 한때는 열풍을 일으켰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2014년 등장한 허니버터칩은 단맛과 짠맛을 결합한 감자칩이다. 짠맛 일색이던 국내 감자칩 시장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때 웃돈을 주고 구매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시장에 나온 지 1년이 지난 시점에도 품귀 현상이 지속돼 해태제과가 생산설비를 증설했을 정도다. 그러나 열풍은 얼마 안 가 식었다. 설비를 늘린 이후 매출이 급감하며 ‘증설의 저주에 빠졌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이 밖에 지난해 나온 꼬북칩 초코츄러스맛, 첵스 파맛 등이 한때 돌풍을 일으켰으나 소비자 관심을 오랫동안 유지하지는 못했다.

이은희 교수는 “허니버터칩은 짠맛을 내는 상품이 주를 이루던 국내 감자칩 시장에 단맛을 가미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했다. ‘스낵 시장을 바꾸겠다’같이 소비자가 공감할 만한 장기 목표나 철학을 제시하고 혁신을 이어갔다면 팬덤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넓고 얕은 팬덤

▷이성 대신 감성 자극해야

인지도와 충성도가 일정 수준 이상은 되지만 단점이 있어도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할 정도로 충성도가 높지는 않은 기업은 넓고 얕은 팬덤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 넓고 깊은 팬덤을 보유한 기업에 비해 영향력은 작지만 잠재력은 있는 부류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이 해당한다.

기술력이나 인지도를 놓고 보면 삼성전자는 최상급이다. 폴더블 스마트폰, 5G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 시장 최신 트렌드를 이끌어간다. AS 부문에서도 만족도가 높기로 정평이 났다. 점유율 또한 상위권이다. 시장조사 업체 캐널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17%를 점유하며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라이벌 애플에 비해 고객 충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두 기업 스마트폰 부문 실적을 보면 팬덤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플래그십 단말기 ‘갤럭시 S20’ 사전 예약을 받고 3월 정식 판매를 시작했다. 통상 새 제품이 나오면 관련 사업 부문 매출은 신제품 효과에 힘입어 증가한다. 하지만 지난해 1분기와 2분기 삼성전자 모바일(IM) 사업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반면 애플이 아이폰12를 선보인 2021 회계연도 1분기(2020년 9~12월) 애플의 아이폰 매출은 17% 늘었다.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많은 스마트폰을 판매하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낮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애플의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이익 점유율은 60.5%였지만 삼성전자는 32.6%에 머물렀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잠재력이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감성을 자극하는 전략을 활용한다면 넓고 깊은 팬덤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자가 삼성전자 제품을 구매할 때에는 제품 기능과 편리함, 가격 대비 성능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한다. 반면 애플 제품을 구매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잣대를 적용한다. 럭셔리하다는 이미지가 확고하고 스티브 잡스의 창업 스토리, 철학 등을 통해 팬덤을 구축한 덕분이다. 애플은 거의 종교에 가깝다는 말까지 나온다. 브랜드 이미지는 감성의 영역인데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은 스펙, 가성비 등 이성적인 점을 강조한다. 이성적인 면을 넘어 감성적인 터치가 필요한 시대다”라고 분석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국내 1위 자동차 기업이고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하지만 테슬라나 벤츠, BMW, 아우디에 비해 브랜드 이미지나 팬층이 약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는 기업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 완전히 고급 브랜드 이미지도 아니고 글로벌 시장 전체를 고려하면 완전히 대중적인 이미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벤츠나 BMW는 ‘명품’ ‘갖고 싶은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처럼 브랜드 정체성이 확고해야 충성 고객을 만들 수 있다. 현대차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선보인 것은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리미엄 이미지는 단순히 노력한다고 해서 형성되지 않는다. 역사와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좁고 깊은 팬덤

▷팬덤에 의존해 혁신 뒤처져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소수 마니아층을 팬으로 확보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팬덤이 좁고 깊은 유형이다. 좁고 깊은 팬덤은 양날의 검이다. 기업에 이득이 되기도 하지만 위협이 되기도 한다. 팬덤에 의존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기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엔씨소프트 간판 게임 ‘리니지’ 시리즈는 소수 마니아 이용자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앱애니에 따르면 월간사용자수(MAU) 기준 ‘리니지2M’과 ‘리니지M’은 지난해 국내 게임 순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매출 순위는 리니지2M이 1위, 리니지M이 2위다. 매월 리니지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 수백만원 이상을 쓰는 소수 이용자가 매출을 떠받쳐줘 가능한 결과다.

확률형 아이템은 뽑기와 같은 방식으로 판매되는 상품이다. 게이머가 돈을 내고 아이템이 들어 있는 ‘랜덤 박스’를 구입하면 엔씨소프트가 정한 확률에 따라 아이템이 지급된다. 성능이 좋은 아이템일수록 당첨 확률이 낮다. 상위권 게이머는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구매를 반복한다. 리니지 ‘핵과금 이용자(돈을 많이 쓰는 게이머)’에 힘입어 엔씨소프트 실적은 가파르게 성장한다. 리니지M이 시장에 나온 2017년 엔씨소프트는 매출 1억7587억원, 영업이익 585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79%, 78% 늘었다. 지난해에는 리니지2M 인기 덕분에 매출 2조4162억원, 영업이익 8248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실적 성장에도 엔씨소프트에 대한 시장의 불안은 상당하다. 리니지 아이템 판매에 의존하며 새로운 IP와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데에는 공을 들이지 않는다는 우려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확률형 아이템은 한국이나 중국을 비롯해 성과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많은 일부 시장에서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북미,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는 이 시스템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용자가 많다. 엔씨소프트는 국내 매출 비중이 높은 편인데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스킨(의상 등 외형을 꾸미는 아이템) 판매 비중을 늘리고 리니지 이외에 새로운 캐시카우 IP를 발굴하는 등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블랙베리 스마트폰 역시 소수 팬덤에 의존하다 도태된 사례다. 블랙베리는 쓰기 편리한 쿼티(QWERTY) 자판과 뛰어난 보안성 덕분에 스마트폰 시장 초기에 인기를 끌었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와 패리스 힐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 인사가 사용하며 이름을 알렸다.
애플과 삼성전자, 샤오미, 화웨이 등이 시장점유율을 키워갈 때에도 블랙베리를 선택한 마니아층이 상당수였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대응하지 못하고 쿼티 키보드와 자체 운영 체제를 고집한 탓에 ‘예쁜 쓰레기’라는 오명을 입었고 마니아층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2016년 블랙베리는 자체 스마트폰 생산을 중단하고 중국 TCL에 개발과 생산, 마케팅 권한을 넘기는 라이선스 계약을 했다.

최근 블랙베리는 자동차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하며 재도약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행보는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박지영 기자 autum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6호 (2021.02.17~2021.02.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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