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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과거 냉전 연상 미·중 갈등, 美대선까진 해소 난망… 트럼프, 무역합의 폐기나 추가 관세 부과는 힘들 듯
2020-06-29 13:59:05 

국가 간의 외교는 우방이 아니라 적성국과 하는 것이란 격언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 사실상의 ‘냉전’에 빠져들면서 외교적 노력이 단절된 것은 그런 측면에서 역설적이다. 잠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 미중 관계를 복기해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전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 <터프해질 시간>에서 “냉정히 말해 중국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며 “미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고, 중국이 시장 질서를 교란하면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일찌감치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강경하게 맞서면 중국도 미국을 존경하게 될 것”이라며 “그런 뒤에야 중국과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2016년 대선에서 미국인들이 정치나 외교 경험이 전무한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데는 반중(反中) 정서가 큰 몫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7월 대중 관세전쟁을 개시했을 때도 미국 내 여론은 대체로 박수를 쳤다. 미국이 무소불위로 성장하는 중국을 지금 견제하지 않으면 10년 뒤 세계 최강국의 자리마저 뺏길 것이란 두려움이 미국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뼛속까지 반중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을 전면에 세워 미중 무역협상을 밀어붙였다. 하버드대 경제학박사인 나바로 국장은 일찍이 <웅크린 호랑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중국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패권 세력으로 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가까스로 1단계 무역합의를 끌어냈다. 류허 중국 부총리를 백악관으로 불러 병풍처럼 세워놓고 승전식을 치렀다. 하지만 합의 내용은 ‘속 빈 강정’이란 평가를 받았다. 미국산 농산물의 대중 수출을 늘리긴 했지만 중국의 구조적 문제에는 손을 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폭로로 빛을 바랬다. 볼턴 전 보좌관은 논란이 된 신간 <그것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에서 지난해 6월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자리에서 농산물 수출이 자신의 재선에 중요한 이슈라며 합의를 간청했다고 폭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중국을 공격해온 이유가 국익이 아니라 사익이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도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2월까지도 중국의 대응을 칭찬하고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을 추켜세웠다. 그러나 3월 이후 미국에 코로나19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자 중국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책임론을 놓고 재발한 미중 갈등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됐고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문제를 계기로 폭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기야 “중국과 모든 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며 공세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미국은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채택을 강행한 데 대한 상응조치로 미국이 그동안 홍콩에 부여해온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홍콩 특별지위가 박탈되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에는 중국 본토와 동일한 관세율이 적용될 뿐 아니라 비자 면제 등 각종 혜택이 박탈된다. 미국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에도 일국양제를 전제로 홍콩의 특수한 지위를 인정해왔다. 미국은 또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미국에 체류 중인 일부 중국인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을 사실상 추방키로 결정했다. 미 상무부는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미국 기술로 제작된 반도체 공급을 제한했다. 또 미국 공무원들의 퇴직연금인 연방공무원저축계정(TSP)이 중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차단하고, 중국 기업의 뉴욕증시 상장을 까다롭게 만드는 방안도 도입됐다. 트럼프 정부가 집권 1기의 핵심 성과로 내세워온 미국의 ‘리쇼어링(Reshoring)’ 정책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 공화당뿐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도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을 본국으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백악관의 대중 매파들은 한발 더 나아가 연방기관이 미국산 제품을 의무 사용토록 하는 행정명령도 준비하고 있다. 피터 나바로 국장이 주도하는 이 정책은 의료장비 등 핵심 분야에서 중국산 제품 수입을 줄이고 국산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러시아, 한국, 호주, 인도, 브라질 등을 초대해 G11, 또는 G12 형태로 만들자는 복안도 공식화했다. 사실상 중국을 외교적으로 포위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대하는 최근 분위기는 냉전 시대 미소관계를 연상케 한다. 미 행정부는 시진핑 주석을 공산당 총서기라고 지칭하고, 중국 정부 대신에 중국 공산당(CCP)을 공식 용어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 전략이 냉온탕을 오가는 것은 11월로 다가온 대선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트럼프 캠프는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친중 인사’로 낙인찍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이 과거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했던 것을 약점으로 파악한 것이다. 또 버락 오바마 정권의 대중 정책을 ‘저자세 외교’로 규정하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되면 다시 친중 정책이 전개될 것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 같은 정치공학적 측면을 고려하면 미중 갈등은 최소한 11월 대선까지는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양제츠 중국 정치국원이 하와이 회동을 가졌지만 큰 소득 없는 탐색전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득표를 위해선 중국을 향한 강경한 레토릭이 오히려 강화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 전 부통령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를 막아내려면 중국에 대한 유화적 공약을 내걸긴 어렵다.
또 미국 정가에는 정파와 당적을 떠나 시진핑 정권에 대한 불신과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1단계 무역합의 자체를 폐기하거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극단적 조치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뒤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회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무역전쟁 재발로 미국 증시는 물론 실물경제까지 추가 타격을 입을 위험성을 트럼프 대통령이 감수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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