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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찬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4)주역 ➊ 주역은 점서보다 자신을 성찰하는 거울

많이 본 기사 | 2013/07/08 09:13

주역은 난해한 책이다. 초보자용으로 서대원의 ‘주역강의(을유문화사, 2008년)’를 권하고 싶다. 난화이진(南懷瑾)의 ‘주역계사강의(부키, 2011년)’는 주역의 해설서로 읽어볼 만하다. 서울대가 추천하는 김경탁의 ‘주역(명문당, 2011년)’은 원본, 즉 점서의 기능에 충실한 번역본이다. 서대원과 난화이진의 책과 함께 김경탁의 ‘주역’을 보면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현대인들도 불안을 달래기 위해 점과 같은 비과학적 요인에 의지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역술인을 찾기도 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그리스인은 ‘신탁’에 의지해 전쟁을 치르고, 페르시아인은 ‘꿈’에 의지해 그리스 원정을 결정한다. 꿈과 신탁 같은 것을 이른바 ‘영속철학’이라고 한다. 영속철학에 따르면 지상의 모든 인간, 대상, 경험은 신성한 세계에 있는 실재의 복사물, 즉 창백한 그림자다. 따라서 꿈이나 신탁 같은 신성한 세계는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고 미래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으로 간주했다.

고대 중국인들을 지배한 영속철학은 ‘역(易)’이었다. 오늘날의 점(占)은 기원전 12세기경부터 주나라에서 만들어진 고대 중국의 ‘역’, 즉 주역에서 출발한다.

주역은 점서에서 시작했지만 주희가 ‘역경’이라고 한 것처럼 경전 중의 경전으로 꼽힌다. 주역은 경(經)과 전(傳)으로 구분되는데 경은 괘사와 효사, 전은 경을 보충한 해설서로 ‘십익(단전 상하, 상사 상하, 계사전 상하, 설괘전, 문언전, 서괘전, 잡괘전)’으로 구성된다. 이 중 64괘의 괘사와 384효의 효사가 담긴 경문을 비롯해 64괘사를 부연 설명하는 단전, 괘의 상과 효의 상을 부연하는 상사, 공자가 주역을 해석한 계사전 등이 핵심이다. 주역은 총 2만4000여자에 이르는데 이 속에 인간의 길흉화복에 대한 예언과 지침이 담겨 있다.

주역의 작자는 먼저 복희씨가 주역의 기초가 되는 팔괘를 만들고 복희 또는 신농씨가 이를 64괘로 나눴다.

팔괘는 구체적인 자연현상을 8가지로 구분한 것인데 하늘(乾), 못(兌), 불(離), 우레(震), 바람(巽), 물(坎), 산(艮), 땅(坤) 등이며 각각 자연과 숫자(1~8)를 상징한다. 주 문왕이 64괘의 괘사를 붙여 마침내 주역이 만들어졌다. 주역이란 주나라 문왕이 만든 점성술이라는 말이다. 이어 문왕의 아들 주공이 64괘에 따라 구체적인 운명을 예측하는 384효사를 지었다. 여기에 문왕보다 600여년 후의 인물인 공자가 경문을 보완하는 십익을 붙였다고 한다. 이것이 주역이 체계를 갖추기까지의 통설이다. 결국 주역은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 걸쳐 복희, 문왕, 무왕, 공자가 공동으로 만든 셈이다.

문왕(기원전 12~11세기)은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다. 문왕이 점차 덕을 얻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은왕 주(紂)는 문왕을 감옥에 가뒀다. 문왕은 감옥에서 주역의 괘사를 지었다. 주역은 문왕이 7년 동안 감옥에서 곤경을 이겨내며 지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왕은 큰아들이 주왕에게 잡혀 가마솥에 넣고 끓여 죽이는 팽형(烹刑)을 당했는데, 문왕은 자식을 삶은 국을 다 마셨다고 한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문왕은 64괘사를 지어 주역의 체계를 만들었다. 문왕은 이(履)괘에서 자신이 감옥에 갇혔을 때의 심정을 괘사에 담았는데 ‘이호미(履虎尾)’, 즉 호랑이 꼬리를 밟은 격에 비유한다. 문왕은 위험한 상황을 직시하고 천리에 순종해서 나아간다면 부질인(不咥人), 즉 호랑이에 물리지 않고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형통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문왕은 미인계로 주왕의 환심을 사 결국 풀려났다. 이때 그는 점을 치는데 이런 점괘가 나왔다.

“위수 이북에서 사냥하면 큰 수확이 있을 것입니다. 용도 이무기도 곰도 아닌 사부 한 사람을 얻을 것이니, 그를 기용하시어 나랏일을 돕게 하면 크게 번창할 것입니다.”

그가 얻은 인재가 그 유명한 강태공이다. 문왕은 강태공과 함께 주나라 건국이라는 대업을 이루는 데 한발 다가갈 수 있었다. 문왕의 대업을 그의 아들 희발(무왕)이 완수해 주나라가 창건됐다.

주역이 ‘역경’으로 불리게 된 것은 주희에 의해서다. 이때부터 역경은 오경의 으뜸으로 손꼽히게 됐다. 주역은 점서로서 운명을 점치는 예언의 기능에 머물지 않고 인간사의 길흉화복에 대한 철학서로서 가치를 더 지니고 있다. 즉 주역은 운명을 ‘점’치는 기능상 측면이 퇴색하고 그보다는 도덕적 수신, 깨달음이나 형이상학적 내용들을 이야기하는 인문주의적 성격으로 전환되면서 비로소 하나의 경전으로서 가치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주역은 독특한 이론체계를 갖고 있다. 주역의 기본 이론은 ‘음양론’이다. 음양론에 따르면 대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상호작용을 한다. 하늘의 기운은 땅에 영향을 주고, 땅은 하늘의 기운에 영향을 받아 자신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하늘에 영향을 줘 변화시킨다. 하늘은 이것을 받아들여 변화하고 그 변화를 다시 땅에게 준다. 순환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사람으로 대표되는 만물이 하늘과 땅의 교감 작용을 받고 다시 자연에 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상호 교감 작용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자연의 도이며 그 과정을 64괘라는 틀 속에 넣은 것이 주역이다.

음양론의 변화 이치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다. 즉 우주 속에서 벌어지는 변화상은 한마디로 한 번 양이 되고 한 번 음이 되는 과정의 순환이다.

주역에서는 우주 삼라만상의 가장 기본적인 실체를 ‘기(氣)’로 본다. 기는 실체적 개념일 뿐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는 기능적 매체이기도 하다. 주역은 ‘기’ 하나의 개념으로 모든 사물을 이해·설명하는 ‘기일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기의 작용과 변화 원리를 나타낸 구체적인 개념과 이론이 ‘음양오행론’이다. 오행은 만상의 탄생과 소멸, 변화를 주관하는 다섯 가지 기초 원소인 ‘목화토금수’다.

주역은 영어로 ‘변화의 책(Book of Changes)’이란 말로 번역된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고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나 자신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외적 변화에 대한 관찰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주역은 바로 이런 자기 성찰을 통해서 스스로를 재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주역은 결코 인간의 정해진 운명론을 이야기하는 점서의 성격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주어진 상황을 잘 살피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라는 ‘입명(立命)’을 주문한다.

64괘의 384효는 주체적으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도록 만들어주고, 자기 스스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384효의 어떤 효가 나오더라도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자관(自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관이란 자신에 대한 단순한 관찰이나 수동적인 반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적극적인 자기반성과 실존적인 자기 해석을 의미한다. 주역은 “나의 생을 살펴서 나아가고 물러난다(관괘 육삼효사)”라고 했다.

주역의 발생적 기원은 ‘점서’이지만 후대로 갈수록 정보 전달이나 예언의 기능에서 나아가 점치는 자의 주체적 깨달음을 도와주고 조언해주는 기능이 점점 강화된다. 이게 오늘날 우리가 주역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13호(13.06.26~07.02 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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