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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기술이 천만금보다 값지다"…글로벌효성 키운 도전DNA

많이 본 기사 | 2018/08/21 17:46

◆ 다시 기업가정신이다 ◆

"기업의 역할은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기업가의 '업(業)'은 사회와 국민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 이를 실현하는 기업 경쟁력의 본질은 '기술'에서 나온다."

은백색 나일론 실을 생산하는 작은 회사였던 효성. 이 회사는 반세기 만에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다수 보유하며 섬유·소재 부문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 한국 재계사에서 효성은 이처럼 '국부(國富)'와 사회적 '책임'을 대물림하는 '기업가정신'을 실천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효성은 창업 1세대인 만우(晩愚) 조홍제 회장(1906~1984)의 도전 DNA와 산업보국의 기업가정신이 후대에 이어지면서 뿌리가 튼튼한 명문 장수기업으로 성장해왔다. 3대째 후대 경영자를 육성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경영철학을 학습시키고 엄중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도록 했다. 창업주 조홍제에서 조석래로, 그리고 그의 장남인 조현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효성이 부침 없이 건재한 비결도 이 같은 기업가정신의 발현에 있다는 평가다. 조홍제 회장이 그의 아들과 손자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이 바로 '기술을 축적해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기업가정신이었던 것이다.

산업보국의 사명감

조홍제 회장은 광복 후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대 상황을 보며 자신의 역할을 확신한다. '선비정신'을 지닌 기업가였던 그는 본인의 업이 사회와 국민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1926년 6·10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고문을 받은 경험은 "서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키웠다.

앞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삼성물산 창립과 경영에 참여하기도 한 조 회장은 1962년 효성물산을 토대로 홀로 서기에 나선다. 특히 조 회장은 나라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기간산업 혹은 중간재 산업에서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화학섬유 사업의 장래성에 주목하게 된다. 동양나이론은 발전을 거듭해 타이어코드 부문 세계 1위, 스판덱스 부문 세계 2위, 나일론 부문에서 세계 5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화섬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또 한영공업을 인수해 효성중공업으로 개편하고 중공업에 진출하는 등 20여 개 대기업군을 거느리는 효성의 토대를 쌓았다. 그러면서도 늘 "업이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도 나설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아들인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역시 산업보국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조 명예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재임 시절 "그래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거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2009년 노사 정책에 대한 사회적 격론이 일자 내세운 기준도 '일자리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 회장은 '기술기업' 효성의 토대를 만들었다. 1976년 동양미래대학을 운영하면서 그가 내세운 교시는 바로 '몸에 지닌 작은 기술이 천만금의 재산보다 낫다'는 것이었다. 기술력 없이는 절대 선진경제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60년대 후반 독일 출장길에 오른 조 회장은 독일이 전후 10년 만에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독일 기업들이 생산공장과 똑같은 설비를 갖춘 시험공장까지 만들어놓고 연구개발(R&D)에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조 회장은 "미래에는 품질이 기업의 사활을 결정한다"며 1971년 화학섬유 기술을 연구하는 국내 최초의 민간 연구소인 '효성기술연구소'를 만들었다. 1978년에는 중공업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1968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 타이어코드를 생산한 효성은 1978년 처음으로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독자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조 회장의 유훈은 아들인 조 명예회장 시대에 비로소 꽃을 피운다. 원래 대학교수가 꿈이었던 조 명예회장은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1966년 부친의 부름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었다.

현재 효성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스판덱스는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과 뚝심 경영의 결과물이다. 2000년대 중반 중국 업체들 추격이 거세지면서 스판덱스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내부 반대에도 부딪혔다. 조 명예회장은 역으로 '투자 확대'라는 승부수를 던진다. 2010년 효성은 마침내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했고 현재까지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이어오고 있다. 효성의 타이어코드 역시 세계 시장점유율 45%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1위 제품이다. 전 세계에 굴러다니는 타이어 2개 중 1개에는 효성의 타이어코드가 달려 있다.

"의로운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라"…사회적 책임 실천

조 회장은 "기업하는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기에 앞서 하는 일이 의로운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무와 깨끗한 기업 문화 정착을 일찍부터 강조해왔다. 이 같은 행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가치가 보편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를 실천해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평생을 교육에 힘썼다. 동양나이론 울산공장을 건설하면서 자금 상황이 어려워도 배명학원의 신규 건물 건축비용을 후원하고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특히 조 회장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20년 이상 매년 40여 명의 학생에게 학비 전액을 보조해주는 장학사업을 전개했다. 일반적인 장학사업과는 달리 아무런 조직도 이름도 없어 '이름 없는 장학회'로 불렸다. 조 회장은 "이 같은 사실을 굳이 세상에 알릴 필요가 없다"면서 조직도 명부도 없는 장학회를 운영했다. 후일 조 회장의 이런 장학사업은 '영남장학회'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

투자·기술전수 등 활발…中·베트남서 모범기업 자리잡은 효성

효성은 해외시장 개척 '전초기지'인 베트남에 효성의 '기업가정신'을 전수하고 있다. 특히 '기술 중시' '사회적 공헌'이라는 효성 기업가정신이 현지에 녹아들어 짧은 시간 내 베트남 기업에 '롤모델'이자 베트남 국민에게 사랑받는 '호감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효성의 베트남 진출을 주도한 조석래 명예회장은 초기 투자 당시만 하더라도 고무나무 밭으로 '불모지'에 가까웠던 베트남 동나이성 지역을 보면서 효성 창업 초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조 명예회장은 단순히 해외 법인에 진출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효성의 '기업가정신'을 수출하자는 비전을 세우게 된다.

조 명예회장은 경영에 본격 참여한 1968년 당시 효성의 모태 공장인 울산공장을 완공했던 기억을 되살려 당시 열정과 기업가정신을 그대로 베트남에 옮기려는 시도에 착수했다. 또 동나이성 지역을 베트남 핵심 경제지로 성장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선제적 투자와 확고한 현지화 전략은 효성 베트남법인의 성공 비결이다. 확고한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외국 기업'이 아니라 내수 기업과 같은 포지션을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효성의 트레이드마크인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은 효성을 '호감 기업'으로 만들었다. 효성은 베트남법인이 위치한 동나이성 지역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고용 창출은 물론 책임경영을 이어가는 효성을 반기는 분위기다. 조현준 회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이어받아 베트남을 핵심 제품을 모두 생산하는 글로벌 복합생산기지로 조성해 글로벌 효성으로서 '제3의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구상이다.

효성은 베트남뿐 아니라 중국 시장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스판덱스·타이어코드 등 핵심 제품에 15억달러 이상 투자했으며, 지난해 중국 법인 매출은 22억달러를 넘어섰다. 현지인 채용도 7000명을 넘어서 일자리 창출은 물론 구호기금 지원, 우수 학생 한국 유학 지원, 산학 협력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홍제 회장 생전 일화…"구두계약도 약속 돈보다 신의 우선"

효성그룹은 2004년 만우(晩愚) 조홍제 회장 20주기를 맞아 그의 일화를 담은 일화집 '여보게, 조금 늦으면 어떤가'를 내놨다. 일화집은 고인의 지인들 이야기를 토대로 꾸며졌으며, 삼성과 효성 두 기업을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조 회장의 기업관과 인생관 등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이 담겨 있다. 그의 호인 만우는 늦되고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가 56세라는 늦은 나이에 자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지었다. 그의 호와 달리 그는 늦었지만 어리석지 않았다. 후대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기업가정신'을 남겼기 때문이다.

일화집에 따르면 조홍제 회장은 1960년대 초 당시 대기업에 생소했던 '기획부'를 신설한다. '미래전략실' '전략기획실'의 시초 같은 셈이다. 기획부는 신규 업종 발굴을 맡았다. 10여 명의 고급 인력과 2년여의 시간을 투입한 기획부는 동양나이론 신화를 만들어내는 1등 공신이 됐다. 당시는 기업 경영에 있어서 현대적인 기법이나 이론이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았고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하던 시대였다.

만우는 벤치마크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1960년대 일본 기업들과의 격차를 인식하고 일본 나일론 개별 업체에 대한 정보와 경영 각 분야, 조직, 인사, 생산, 재무, 회계, 사무정보 등에 걸친 성공 및 실패 사례를 연구했다. 이를 통해 당시 동양나이론이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3~4년 사이에 선발주자들을 추월하는 데 성공한다. 원조 '패스트폴로어'인 셈이다.

만우는 선비정신을 가진 기업가로 불렸다. 만우 회장이 삼성물산에 몸담고 있을 당시 동양그룹 이양구 회장은 삼성물산의 주요 거래처였다. 이 회장은 만우 회장과 ㎏당 3800원에 설탕을 구두로 계약하고 값을 치렀는데 홍콩에서 출발한 배에 담긴 설탕 가격이 한 달도 못되는 사이에 1만500원으로 올랐다. 계약을 취소하거나 가격을 올리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었지만 만우는 이 회장에게 아무 조건 없이 약속한 전량을 약속한 가격에 넘겼다. 만우는 "구두계약도 약속인데, 한번 약속을 했으면 그만이지 상황이 좀 달라졌다고 어찌 다시 바꾸는가"라고 말했다. 이후 만우는 "장사란 한 푼의 이익을 위하여 10리 길을 뛰는 것이지만 내 생각은 돈보다는 사람의 신의가 앞선다는 것이었을 뿐"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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