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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삶과 죽음 사이 그 어드메 즈음 ‘경주’, 녹차와 흑차 사이 그 어드메 즈음 ‘황차’
2022-08-04 15:20:13 

“경주 관광 영화 아니야?” 이런 반응이 나올 정도로 잘 가꿔진 경주의 아름다운 풍광 곳곳을 영화에 아낌없이 담아낸 영화 <경주>.

친한 선배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북경대 교수 최현(박해일)은 문득 7년 전 경주의 한 찻집에서 봤던 춘화의 기억을 더듬으며 충동적으로 경주에 간다. 당시 춘화를 봤던 찻집을 찾아가 찻집 주인 윤희(신민아)에게 대뜸 “7년 전 여기 있던 춘화 못 봤어요?” 묻는 최현. 로맨스인 듯 스릴러인 듯 둘 사이에 내내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1박2일 그들이 경험했던 모든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순간에 부닥친다. 삶과 죽음, 실제와 허상, 기억과 진실이 오묘하게 오버랩되며 수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경주>는 중국에서 태어나 연변대 중국문화과를 졸업한 조선족 장률 감독의 작품이다.

“춘화는 없다”고 답하는 윤희에게 최현은 찻집 메뉴판을 본 후 황차를 마시겠다고 주문한다.
윤희는 “황차를 아느냐”며 “황차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하고 신기해한다. 왜 최현은 하필 황차를 주문했을까. 녹차를 주문할 수도, 백차를 주문할 수도, 보이차를 주문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장률 감독이 영화 <경주>를 만들기까지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힌트가 보인다.

영화는 장 감독이 실제 경주에 갔을 때의 경험과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에서 윤희가 운영하는 찻집 ‘아리솔’은 실제 경주에 위치한 같은 이름의 찻집이다(아쉽게도 ‘아리솔’은 2019년 폐업했다). 우연히 아리솔에 들렀던 장 감독은 그곳에서 왠지 묘하게 눈길과 마음을 끄는 춘화를 만났고,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봤던 그 춘화를 그린 이를 수소문했다.

춘화를 그린 이는 동국대 미술학과 김호연 교수. 마침 김 교수 부인이 경주에서 ‘능포다원’이라는 찻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능포다원은 영화배우 배용준이 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에 소개되면서, 특히 일본인 사이에 엄청 핫~한 찻집으로 떠올랐다. 책을 읽고 경주를 찾은 일본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일본 매스컴의 능포다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 방송사가 “촬영을 하러 갈 테니 가장 한국적인 차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고 고민하던 능포다원 이일순 대표는 평소 즐겨 마시던 황차에 더덕, 도라지, 홍삼 엑기스를 가미해 더덕황차, 도라지황차, 홍삼황차를 만들어냈다. 이런 에피소드가 영화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이 대표는 왜 수많은 차 중 한국적인 차로 황차를 떠올렸을까. 사실은 더 원초적인 질문이 앞선다. 한국에 녹차 아닌 황차라는 이름의 차도 있었던가. 녹차와 홍차는 모른다면 외려 이상할 테고, 보이차는 뭔지는 모르더라도 대충 이름은 한 번씩 다들 들어봤을 테고, 백차는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차다. 청차가 낯설 수 있지만, 한때 열풍이 불었던 ‘우롱차가 바로 청차’라고 하면 “아하” 하시는 분도 많을 터! 그런데 황차는 정말 낯설다. 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만 낯선 게 아니라, 차를 좀 마셔봤다는 사람 중에서도 황차를 마셔본 경험이 있는 이는 그리 흔치 않다.

황차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차는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 복습. ‘카멜리아 카넨시스’라는 차나무 종으로 만드는 차는 제다 방법과 산화도에 따라 녹차, 백차, 황차, 홍차, 청차, 흑차 등 6대 다류로 분류한다. 최근에는 6대 다류에 보이차를 포함해 7대 다류로 분류하기도 한다. (옥수수차, 결명자차, 보리차, 구기자차, 유자차, 허브차, 연꽃차, 국화차, 허브차 등은 어디에 속하냐고? 이런 차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차’가 아니다. 차 대용이라는 의미에서 ‘대용차’라 부른다.)

‘산화도’는 차의 종류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한 가지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한 가지가 산화와 발효의 구분이다. 산화는 산화효소가 산소와 접촉해 나타나는 변화, 발효는 미생물의 개입으로 인해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를 의미한다. 차나무에서 찻잎을 따는 순간부터 찻잎 속 성분이 변화한다. 찻잎 속 ‘폴리페놀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 현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흔히 ‘갈변’이라 표현하는 현상이다.

녹차는 찻잎을 따자마자 높은 온도에서 살청해(덖어) 인위적으로 ‘폴리페놀 산화효소’의 활동을 멈추게 한다. 거의 산화가 되지 않은 녹차는 찻잎이 갈변되지 않고 녹색을 띤다. 청차는 산화가 중간 정도, 홍차는 산화가 거의 100% 가까이 이루어진 차를 말한다. (영어에서 홍차를 ‘black tea’ 라고 부르는 것은 홍차 잎이 산화가 엄청 되어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빛깔을 내기 때문이다.)



녹차, 청차, 홍차는 이렇게 인위적으로 산화 정도를 조절해 만든다. 흑차는 다르다. 차를 일차적으로 가공한 후 차에 미생물 발효가 일어날 수 있게 했다. 차를 만든 후 발효가 일어난다고 해서 흑차를 ‘후발효차’라고도 부른다.(보이차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 예전에는 흑차의 한 종류로 분류되곤 했다.)

그럼 황차는? 황차는 기본적으로 녹차 제다법을 따른다. 녹차 제다법과 다른 점은 딱 한 가지. 녹차가 살청(덖기)→유념(비비기)→건조의 과정을 거치는 데 반해, 황차는 살청→유념→민황→건조의 과정을 거친다. ‘민황’은 찻잎을 종이나 천으로 싸거나 덮어두고 그 위에 물을 뿌리거나 온도를 올려 발효시키는 과정이다.(메주 발효와 유사한 과정이다) 보통 흑차가 몇 달, 몇 년씩 발효 과정을 거치는 데 반해 황차의 민황 과정은 몇 시간에서 며칠에 불과하다. 발효는 되지만, 살짝 됐다는 의미에서 ‘약발효차’라고도 한다. 또 민황 과정을 거쳐 만든 황차는 녹차보다는 수색이 좀 더 노란황금색을 띤다. 그래서 ‘황차’라는 이름이 붙었을지도.

이런 제다 과정을 알고 있으면 ‘녹차와 흑차, 그 어드메쯤에 존재하는 황차’라는 수식어가 이해가 될 터다. 묘하게 경주와 닮았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삶과 죽음 그 어드메쯤에 자리 잡은 ‘경주’와 ‘황차’의 정체성이 오묘하게 오버랩된다. ‘경주에서 황차를 마시는 것’. 감독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이보다 더 근사한 조합이 있을까.

차의 종주국이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차가 존재하는 중국에서도 황차는 손에 꼽는다. 생산이 많이 되지도 않고, 쉽게 구할 수 없으니 소비자도 잘 찾지 않는다. 군산은침, 몽정황아 등이 대표적인 황차의 종류다. 녹차가 수백 가지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단촐하다.





▶ 중국 황차의 대표주자 ‘군산은침’

호남성 동정호 안 ‘군산도’ 일대에서 생산

‘백호(하얀털)’ 많아 은색에

‘뾰족뾰족’ 침같이 생겼다 해서 ‘은침'


황차의 대표주자로 보통 ‘군산은침’을 꼽는다. 군산은침은 군산에서 나는 은침차다. 은침에서 ‘침’은 찻잎을 납작하게 눌러 ‘뾰족뾰족 침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은’은? 금은 할 때 그 은이 맞다. 어린 찻잎에는 보통 ‘백호’라고 하는 하얀 털이 붙어있다. 그 색상이 은빛이 난다고 해서 ‘은’자를 붙였다.

군산은침은 호북성과 호남성의 경계를 이루는 중국 최대 호수 동정호 안에 위치한 작은 섬 군산도 일대에서 생산된다. 동정호, 악양루, 군산도는 호남성을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관광지다. 악양루에서 바라보는 동정호의 일몰이 특히 장관이라고. 오죽하면 ‘천하의 호수 중에는 동정호가 으뜸, 천하의 누각 중에는 악양루가 으뜸’이라는 문장도 있을까. 각각 시성(詩聖)과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인 두보와 이태백이 앞다퉈 ‘등악양루(登岳陽樓)’라는 시를 발표한 이후 동정호와 악양루는 ‘인문학에 관심 쫌 있다는’ 이들의 필수 탐방 명소로 자리 잡았다.

동정호는 적벽(삼국대전의 그 적벽이 맞다)을 지나 양쯔강으로 이어진다. 촉의 유비와 형주(지금의 호북성·호남성)를 놓고 다투던 오의 손권은 대장군 노숙에게 전략 요충지인 동정호 부근을 장악할 것을 지시했다. 노숙은 동정호에서 수군을 훈련시키면서 감독할 수 있는 망루를 지었는데, 이게 바로 ‘악양루’다. 악양루에서 동정호를 바라보면 호수와 함께 호수 가운데 떠 있는 군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마치 ‘은쟁반 위에 놓인 푸른 조개’처럼 보인다 해서, 군산도는 ‘동정호의 진주’로도 불린다.



호남성을 대표하는 명품 차 군산은침은 황차로서는 유일하게 중국 10대 명차에 선정된 차다. 특히 마오쩌둥이 군삼은침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오쩌둥은 호남성 성도인 장사에서 남서쪽으로 130㎞쯤 떨어진 샤오산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대표하는 차라서 그랬을까. 마오쩌둥은 생전 군산은침을 즐겨마셨을 뿐더러, 중대결단을 해야 할 때마다 고향을 찾아 군산은침을 마셨다는 스토리가 전해 내려온다.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차가 어째서 한국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차’ 쯤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한국에서 차를 많이 재배하는 곳으로 하동, 보성, 제주가 꼽힌다. 또 절에서 스님들이 차나무를 소량 재배해 본인만의 제다법으로 차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스님이 만든 차나 하동, 보성 등지에서 만든 차는 녹차 아니면 대부분 황차다. 그러나 실상 한국에서 ‘황차’라고 불리는 것들은 6대 다류 중 하나인 전통적인 의미의 황차라기보다는 그냥 ‘한국형 발효차’인 경우가 많다. 황차가 살짝 발효를 시킨 차니 비슷하다며 ‘황차’라고 이름을 붙였다.
차 업계에 “중국 황차와 한국 황차는 다르다”는 얘기가 있는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마무리는 다시 <경주> 얘기로. 최현의 이틀 동안 경주에서의 기묘한 일상을 그린 영화 <경주>에 이어 장률 감독은 <군산>과 <후쿠오카>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두 작품 모두 기이하고도 독특한 것은 <경주>와 다를 바 없다. 사실 ‘기묘’ ‘기이’ 이런 표현 자체가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꿈같고, 허상같고, 다른 차원에 잠시 다녀온 것 같고…. 그런 경험 다들 가끔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나.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편집장 sky6592@mk.co.kr]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3호 (2022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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