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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통일휴게소 (하)
2022-08-01 06:01:03 

[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57] 북한학원론 첫 시간이었다. 120여 명의 학생 중 7명이 모자를 쓰고 있다. 7년 전 강의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무신을 신고 반바지도 입어봤던 자신이었지만 당황스러웠다.
유학 후 진행한 첫 강의였다.

학과장을 만났다. "근데 수업 중에 모자를 쓴 학생들이 있네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답이 돌아온다, "애들이 떠들거나 자던가요? 그렇지 않다면 그냥 두세요, 요즘 애들은 예전과 많이 달라요, 괜히 문제 삼지 마세요 시끄러워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다음 시간 진지하게 말했다. "대학교는 사회로 진출하는 관문이다. 전문성은 물론이고 인성도 배우는 곳이다. 직장과 사회 생활하면서도 모자를 쓸 것이라면 좋다. 그렇지 않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차원에서 수업 중에 모자를 가능한 한 벗는 것이 좋겠다. 나는 선생으로서 가르침에 최선을 다하겠다."

모두 벗었다. 다른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하나하나 잘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이다. 성적과 입시 위주 교육 속에 사회와 도덕 교과목은 사라지고, 전통 미덕과 미풍양속 전승(傳承)은 설 자리를 잃었다. 옳고 그름을, 좋고 나쁨을 성심으로 전하면 학생들은 따른다.

통일을 얘기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현실이다. 청소년들은 통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취직에 집 마련이 최우선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맞춰야,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나이 든 세대가 말한다. 이제 통일은 어려우니 남한과 북한이 따로 사는, 공존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이 사실상 통일이라고까지 나아가는 사람도 있다. 지난 20대 대통령선거에서 한 유력 후보자도 공공연히, 재삼 그리 강조했다. 법조인 출신이 헌법 66조 3항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를 깡그리 무시했다.

과연 그럴까? 청소년을 대상으로 통일 강연을 한다. 통일이 돼야 일자리, 부동산, 경제성장 등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있고, 분단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통일이 돼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주권국가의 귀중한 가치인 정치 강국 및 군사 주권국이 될 수 있다. 통일이 돼야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이념 갈등, 좌우 투쟁이 진정되고 사회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러분이 정말로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면 해답은 통일에 있다. 통일이 바로 여러분 삶의 수준과 질을 결정한다고 짚어가면 그들은 공감한다. 자신들의 삶과 통일의 연계성을 다시 보고 의식하기 시작한다. 마냥 철없고 어려 보이지만 서해에서 연평도에서 목숨 바쳐 응전한 그들이다.

부모, 어른이 바뀌어야 한다. 그들 자신이 왜 통일을 반드시 이뤄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신념과 견해가 미흡하다. 통일에 관해 국민 누구나 몇 시간을 주장하고 반대하면서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통일이 과연 우리 삶에, 대한민국에, 한민족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어떠한 통일이 바람직한가, 통일은 어떻게 전개돼야 하는가,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가지고 토론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전협정' 69주년을 지나 광복과 분단 77주년을 바라보며 묻는다. 당신에게 통일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상정하는 통일 방법과 과정은 어떠합니까, 자식과 후손들에게 어떤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 것입니까?

통일교육만을 따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미풍양속교육, 민주시민교육과 통일교육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초·중·고, 대학 정식 교과목에, 성인교육에 채택돼야 한다. 물질화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화 추세 속에서도 우리의, 우리만의 가치와 미덕은 지켜져야 한다. 그 바탕은 하나 된 한반도다.

다시 만난 북측 안내원의 반가움에, 토론의 열정에 잔이 오가고, '민족의 성산(聖山)' '조선의 기상(氣像)' 백두산 방문의 설렘에 밤을 지새우다 2003년 7월 29일 아침 7시 15분에 눈을 떴다. 늦었다, 후다닥 내려가려는데 고려호텔의 엘리베이터는 하세월이다. 텅 빈 로비, 길가로 나가 도로를 보다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쯤인가 멀리 버스가 꼬리를 물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 한 명이 빠진 걸 알고 모두가 다시 호텔로 돌아온 것이다.
눈총을 한 몸에 받으며, 그렇게 백두산 삼지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손기웅
베를린장벽 붕괴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통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통일연구원에 봉직했으며 지금은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한국DMZ학회장, 한독통일포럼 공동대표, 중국 톈진외대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 통일: 쟁점과 과제 1, 2' '30년 독일 통일의 순례: 동서독 접경 1393㎞, 그뤼네스 반트를 종주하다' '통일, 가지 않은 길로 가야만 하는 길' '통일, 온 길 갈 길'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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