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전체뉴스
확대확대 축소축소 프린트프린트 목록목록

`반일 강국`北김정은, 어쩌다 日`슬램덩크`에 푹빠졌나
2020-10-17 06:01:01 

[한중일 톺아보기-30]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 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북한군에 의한 해수부 공무원 피살사건과 지난주 3대 세습 이래 최대 규모의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세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쏠리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한국 공무원 피살은 문명화된 땅에서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인 데다, 사건을 둘러싼 의문점들도 많아 국회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사건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과 통지문과 이에 대한 "전화위복의 기회" "계몽군주" 등의 해석들은 국감에서 여야 간 충돌에 기름을 붓는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권력을 물려받은 후, 김 위원장이 보인 무자비하고 예측 불가능한 모습은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의 현실과 맞물려 그를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미국 CNN과 같은 유력 매체조차 그의 사망소식에 대해 오보를 내고, 내로라하는 북한 전문가들도 잘못 예측할 만큼 그에 대한 것은 대부분 베일에 싸여 확인할 길이 묘연합니다. 때문에 권력 핵심부에 접근한 적 있는 이들의 증언은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 해소되는 건 아니지만, 북한의 최고 권력자를 파악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김정은, 日동요 부르고 도쿄 디즈니랜드 찾아

김 위원장은 세습 왕국이자 '유일 지도 체제'인 북한 최고 권력자의 아들답게, 어린 시절 대부분을 전속 가정교사와 보육사가 딸린 평양 관저와 전용 별장에서 지내며 자랐습니다. '김정일의 요리사'로서 유명세를 탄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십수 년간 평양에 머무르며 지켜본 김씨 일가의 사생활을 언론 인터뷰와 저서들을 통해 폭로하며 김 위원장과의 에피소드도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7세 무렵 수행원들과 함께 놀이 상대가 돼 주던 자신과 일본 동요를 부르곤 했습니다. 후지모토가 언급한 일본 동요는 '빨간구두(赤い靴)' '일곱살 아이(七つの子)'로, 모두 전전(戰前)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되고 유명한 동요들입니다. 꼬마 김 위원장은 수행원들에게 해당 동요를 불러보라고 시킨 뒤, 일본어 가사가 맞는지 후지모토에게 확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김 위원장은 8세 무렵인 1991년경 어머니인 고용희와 함께 위조 여권으로 도쿄 디즈니랜드를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통으로 알려진 애나 파이필드 워싱턴포스트(WP) 베이징지국장은 이때부터 김 위원장이 일본을 좋아한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 전 미국으로 망명한 고용희의 다섯 살 아래 여동생 고용숙 등 주변인들은 고용희가 일본을 찾은 것은 나고 자란 곳에 대한 향수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후지모토의 증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형인 정철과 함께 간단한 일본어는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 또한 모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농구밖에 모르던 농구광…'슬램덩크'도 애독

김 위원장이 학창 시절 농구광이라고 할 만큼 농구에 빠졌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김 위원장의 보모 역할을 했던 그의 이모 고용숙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정은은 키가 큰다면서 농구에 심취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죠.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스위스 유학 시절 김 위원장의 급우들을 인터뷰해 보도한 바 있는데, 여기서도 그가 농구에 열중했다는 공통된 증언이 있었습니다.

미국 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와 LA 레이커스의 팬으로서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를 좋아했던 김 위원장은 스위스 주재 포르투갈 대사의 아들인 조엘 미카엘로와 친해 가끔 집에 불러 놀곤 했습니다. 미카엘로는 2010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은(김정은)은 나이키 운동복에 에어 조던 농구화를 즐겨 신었다"며 "방과 후 매일 농구를 했고, 집에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농구게임도 했다. 농구 외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듯했다"고 말했습니다.

권좌에 오른 뒤에도 김위원장은 NBA 선수였던 데니스 로드맨을 3차례나 북한에 초청해 북한 팀과의 친선 경기를 주선하는 등 농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한 바 있습니다. 그는 청소년기 수행원들을 데리고 친형인 정철과 팀을 나눠 가끔 농구시합을 했는데, 경기 내용이 맘에 안 들 경우 살벌하게 질책하는 등 유독 강한 승부욕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가 스위스에서 공부한 기간은 1996년 여름부터 2001년 1월까지 약 5년간인데, 한창 호기심이 많은 10대인 데다 농구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에도 관심이 쏠렸나 봅니다. 일본 주간지 '문예춘추'에 따르면, 당시 평범한 한국 10대들처럼 그도 '드래곤볼' 등 일본 만화를 즐겨 봤는데, 특히 농구 만화 중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슬램덩크'를 애독했다고 합니다.
모친은 '귀국자', 외조부는 일제에 부역

김 위원장의 모친 고용희는 일본 출생입니다. 그녀의 가문은 제주도 출신이지만 일본에 이주했다 다시 북한으로 귀국한 소위 '귀국자' 신분입니다. 현재 제주도는 풍부한 관광자원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관광 명소지만 옛날에는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토양, 일제에 의한 전쟁 기지 활용 등으로 식량 부족과 착취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좀 더 나은 여건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던 제주도민들도 많았는데, 이들 중 고용희의 부친 고경택이 있었습니다.

1929년 일본 오사카 쓰루하시로 이주한 고경택은 이후 군복과 군용텐트를 제작하는 '히로타재봉소'라는 군수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별다른 직책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일제 군국주의에 협력했던 셈입니다. 더군다나 고경택은 일본~제주 간 밀항선을 운영하다 일본 당국에 체포되었던 것이 북송선을 타게 된 주원인이었는데, 실제로 일본 측 북송자 명단에 그는 강제 퇴거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일본에서 30년 넘게 살던 고경택은 이복 자식이 10명이 될 정도로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며 둘째 딸 고용희를 포함해 5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고용희가 12세가 되던 해인 1962년, 재일 조선인 '북송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북송사업이란 일본과 북한 정부가 합의해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 조선인 9만여 명을 1959년부터 1984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북한으로 보낸 사업입니다. 이때 조선인 남성과 결혼했던 일본인 여성 1800여 명도 함께 북으로 향했습니다. '지상 낙원'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북한 땅을 밟았지만, 진실을 깨닫고 괴로워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이들의 열악하고 비참한 생활은 1970년대 이후 외부로 알려지면서 북·일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습니다.

귀국자들은 호적에 이를 표시하는 딱지가 붙고 '재포'(북에서 재일동포를 낮춰 부르는 말)로 불리며 각종 차별에 시달리는 등 2등 시민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일본 공산당 소속으로 재일 조선인들의 북송사업을 도왔던 코지마 하루노리 등 활동가들은 결과적으로 이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꼴이 됐다며 차후 죄책감을 호소하기도 했죠.
김정은의 역린…'백두 혈통' 아닌 '후지산 혈통'?

북한은 계급적 토대(출신 성분)가 매우 중요한 사회입니다. 주거와 생활 전반에 걸쳐 출신 성분이 갖는 영향이 막대해 성분이 나쁘면 진학과 직업은 물론 결혼 상대를 구하는 데도 제한이 많습니다. 최고권력자 집안의 출신 성분은 당연히 흠잡을 데 없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김씨 일가의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백두 혈통'을 누누이 강조해 왔습니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이 공식 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그가 김일성과 똑같다는 인식을 인민들에게 심는 등 소위 '김일성 후광 효과'를 활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모계는 일본 귀국자 출신으로 북에서 '적대계층'으로 분류되는 데다, 외조부는 일제에 부역한 기록까지 있습니다. 김일성 살아생전 고용희는 며느리로 대접받지 못했고, 평양에서 살지도 못했습니다. 고용희 스스로도 출신의 핸디캡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귀국 후 일본 연고를 철저히 숨기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후지모토는 고용희의 말투에서 미묘한 일본어 억양을 감지했으며, 김정일이 고용희를 종종 '아유미'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이 공식 보도한 적은 없지만, 고용희의 출신은 북에서 모두가 쉬쉬하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김 위원장 역시 권좌에 오른 뒤에도 상당 기간 생모에 관한 사항을 발표하지 않았고, 지금도 맘놓고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일 시대와 달리 그는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함께 있는 사진 1장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출생 배경으로 인한 우상화의 한계를 김 위원장이 가진 최대 핸디캡이자 콤플렉스로 보고 있습니다.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자임에도 북에서 권력 계승을 정당화하는 가장 큰 명분인 '혈통'에 있어 떳떳하지 못한 점이 이유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 같은 김 위원장과 일본과의 관계를 두고 북한 내에서 "백두 혈통이 아닌 후지산 혈통"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는 후문입니다.
'최강 반일' 국가 지도층의 이중적 모순

반미, 반제국주의와 함께 반일주의는 북한 정권 유지를 위한 존립 기반입니다. 북한에서 마치 성서(聖書)처럼 여겨지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 등 김일성 전기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3000만 조선인 가운데 가장 미워한 이가 김일성 장군"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을 체제 정당성 확보를 위한 근거로 활용해 왔으며, 북한과 일본은 아직도 국교가 없을 만큼 적대적 관계입니다.
일본 내 반북 정서처럼 북한 내 반일 정서 또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강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 정권은 다량의 일본 상품을 전문 판매하는 상점까지 두고 정권 유지에 필요한 외화벌이를 하고 있으며, 북한 특권층은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가격에 일본 제품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최고 지도자에게 일본은 어린 시절 동요와 만화로 접하고 놀러가기도 했던 '친숙함과 추억의 일부'이면서도, 모친의 출신 문제로 숨기고 싶은 '아킬레스건'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대한민국과 비교해 체제의 정당성으로 '친일청산' '반일'을 내세우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의 권력자와 지도층의 이중적 모습은 북한 사회가 드러내는 수많은 모순점들 중 하나로 보입니다.

[신윤재 기자]

기사 관련 종목

종목명 현재가 등락 등락률(%)
태양 8,290 ▼ 40 -0.48%
레이 44,700 ▼ 800 -1.76%
 
전체뉴스 목록보기
뉴욕증시, 지표 호조에도 기술주 부.. 20-10-17
무디스, 영국 국가신용등급 Aa3으로.. 20-10-17
- `반일 강국`北김정은, 어쩌다 日`슬.. 06:01
'천고마비' 계절인데 내가 살찌는 이.. 20-10-17
미 대선 6개 경합주서 대권 판가름….. 20-10-17

 
로그인 버튼
ID찾기 회원가입 서비스신청  
 
최근조회 탭 보기관심종목 탭 보기투자종목 탭 보기
12.04 14:30    실시간신청     최근조회삭제  
종목명 현재가 전일비 등락률
코스피 2,727.94 ▲ 31.72 1.18%
코스닥 911.94 ▲ 4.33 0.48%
종목편집  새로고침 

mk포토

(주)매경닷컴 매경증권센터의 모든 내용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투자권유 또는 주식거래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본 사이트에 게재되는 정보는 오류 및 지연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이용에 따르는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또한 이용자는 본 사이트의 정보를 제 3자에게 배포하거나 재활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