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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을 즐기려는 자 도시락의 무게를 견뎌라
2022-05-04 06:01:02 

[우리가 몰랐던 북한 시즌2-31] 파릇파릇한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는 봄이 오면 도시락 사들고 가까운 야산에라도 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최근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사들고 동네 산에 올라 먹다 보니 해마다 봄, 가을이면 학교에서 가던 원족이 생각났다.

원족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이라는 뜻으로 한국의 소풍과 같은 의미다. 지역마다 소풍 가는 장소는 조금씩 달라 대도시에서는 놀이동산이나 공원 등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많지만, 시골 학교들은 주로 가까운 야산으로 간다.
우리 학교는 해마다 대략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에 가곤 했다.

소풍하면 떠오르는 것은 도시락, 장기자랑, 체육경기 등인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도시락이다. 북한에서는 도시락보다는 '벤또'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했다. 부모님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 들여 도시락을 준비하는데 학생 본인의 것은 물론이고 담임선생님, 소년단지도원, 책임지도원, 교장선생님, 부교장 선생님의 도시락까지 싸오는 학생들도 있다. 이렇게 도시락이 쌓이다 보면 학생이 혼자 들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가 되기도 한다.

무거운 도시락과 간식을 담은 가방을 메고 학교에 집합한 아이들은 학급별로 줄을 지어 걸어서 목적지까지 간다. 무겁다고 투정하거나 싫어하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그들의 표정은 밝다. 들뜬 기분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걷다 보면 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새 산에 도착해 곧 점심시간이 찾아온다.

학생들은 어머니가 싸준 선생님 도시락을 먼저 선생님께 드린다. 한 학급에 학생이 보통 40~50명이면 적어도 선생님 도시락이 30~40개는 된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건넨 도시락 뚜껑을 하나씩 열어보는데 그 표정을 옆에서 관찰하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그 도시락에 어떤 음식들이 들어 있을지 몰라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열어본다. 기대 이상이면 활짝 웃어 보이는 선생님들, 가끔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락을 한번 쭉 검사하고 난 뒤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에게 드릴 도시락과 다른 선생님들과 식사할 도시락 몇 개를 선택한 뒤에 나머지 도시락들은 몇몇 학생에게 맡겨둔다. 이 학생들은 소풍이 끝나면 선생님의 집으로 배달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필자는 항상 이 도시락 배달 담당이었는데 무거워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도시락을 맡긴다는 것은 선생님의 믿음과 신뢰를 받는다는 것이고, 그 사실이 뿌듯함을 느끼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급별로 원을 지어 빙 둘러앉아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은 데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조금 잘 사는 아이들은 도시락통도 멋있고, 안에 담긴 음식도 갖가지로 다양하다. 보통 밥은 김밥 아니면 흰쌀밥, 반찬통에는 계란말이, 돼지고기볶음, 감자볶음, 두부 부침 등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물론 모든 친구의 도시락이 이렇게 화려한 것은 아니다. 집이 조금 가난하여 소박하게 준비해온 친구들도 있다. 그렇다고 도시락의 질에 따라 차별하거나 편을 가르기보다 서로 돌아가면서 음식을 나눠 먹었다.
이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필자나 주변 지인들의 경험을 토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최근에는 도시락보다는 술, 담배, 현금으로 선물의 형태가 바뀌었다는 증언들도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소풍 가는 학교들이 많을 텐데 북한 방송에서 관련 소식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연일 태양절(김일성 생일) 관련 행사 소식이나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90주년 경축 열병식 등이 주를 이루고 있어 아이들의 소풍 관련 뉴스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성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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