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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때때로 발생하는 재앙에 가까운 전염병 창궐은 일상을 급작스럽게, 예측 불허하게 침범한다.”

윌리엄 맥닐 시카고대 역사학 교수(1917~2016년)가 ‘전염병의 세계사’라는 저서에 남긴 글이다. 마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을 내다보고 던진 말처럼 느껴진다. 많은 석학이 전 세계가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인류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세계를 살아가는 신인류, 즉 ‘코로나 사피엔스’로 거듭난 것이다. 코로나 사피엔스는 일하는 방식, 일상생활 양식, 가치관과 철학이 송두리째 바뀐 삶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



‘문명의 대전환’ 주도할 新인류 도래

생태계 복원·사회 안전망 구축 숙제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됐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인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전 세계 많은 석학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등 국내 대표 학자들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신세계에서 살아갈 인류를, ‘코로나 사피엔스(Corona Sapiens)’라고 이름 붙였다. 생물학적으로 정확하게 이름을 짓자면 ‘호모 코로나리우스(Homo Coronarius)’쯤 된다. 최재천 교수는 공저 ‘코로나 사피엔스’에서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스마트폰을 들고 생활하는 사람)처럼 학명의 규칙이 무너진 합성어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점을 감안해, 학술적으로 무리가 있지만 이 용어를 과감하게 썼다”고 밝혔다.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용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코로나19 발생 전과 후를 가르는 변곡점은 ‘문명의 대전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명의 전환이란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다.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부문에서의 전례 없는 전면적인 변화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새로운 시대 새롭게 부상하는 기준이라는 뜻으로, ‘뉴노멀(new normal)’ ‘넥스트노멀(next normal)’이라 부른다. 또 다른 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는 “노멀(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이 오지 않을지 모른다”며 “뉴노멀은 신화일 뿐(the new normal is a myth)”이라 규정하기도 했다. 어떤 의도로 분석했든, 앞으로 코로나19 발병 이전과는 다른 미래가 연출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생태계 파괴 인류 망친다” 큰 교훈

▷녹색 정당 주류 올라서는 계기 마련

코로나 사피엔스가 제일 먼저 깨우쳐야 할 주제는 ‘생태계 복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은 인류의 생태계 파괴와 관련 깊다.

“역사상 전례 없는 인류의 자연 침범, 바이러스에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제공하는 공장식 축산과 인구 밀집, 지구 온난화.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었다. 이를 고치는 것이 생태백신이다.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지금까지의 삶의 자세를 성찰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동백신이다.”

최재천 교수는 “자연 훼손을 막는 생태백신과 마스크·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행동백신 없이는 어떤 방역체계와 화학백신도 바이러스 팬데믹(대유행)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친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전 세계적으로 ‘그린’이라는 화두를 던진 정당이 주목받는 것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최근 치러진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시장 후보들이 주요 대도시에서 승리했다. 오스트리아에 이어 아일랜드에서도 녹색당이 우파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녹색당에 적대적이던 보수 정당들이 녹색당과 손을 잡는 현상은 꽤 이례적이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도시 녹지 공간과 자전거 등 친환경 교통수단 확대 요구가 높아진 것이 녹색당 부상에 기여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돌봄 이코노미 주목

▷의료 등 공공 서비스 강화 한목소리

코로나 사피엔스는 달라진 경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그 키워드는 안전과 언택트다. 장하준 교수는 “전 세계가 얽혀 살고 있고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지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의료·공공 서비스 등 돌봄경제(care economy)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택트는 코로나19 발병 이후 가장 많이 언급된 신조어 중 하나다. 인류 생활 공간이 온라인·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한다.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방안과 일치하기 때문에 코로나 사피엔스가 잊지 말아야 할 메가 트렌드로 꼽힌다. 한마디로 디지털 문명은 ‘정해진 미래’가 됐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문명의 변화는 시작됐다. ‘포노 사피엔스’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다. 보통 4차 산업혁명이라면 ‘인공지능 로봇’을 떠올린다. 이보다 스마트폰 인간에 방점을 둬야 한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인간의 DNA는 생존율이 높은 쪽을 선택한다. 바이러스 팬데믹 쇼크가 반복된다고 봤을 때 스마트폰 중심 언택트 경제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재붕 성균관대 서비스융합디자인학과 교수 얘기다.

언택트는 기업 조직문화, 일하는 방식(the way of work)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대면이 정답이라고 믿었던 채용은 물론, 근무 환경 등에서 비대면은 일상이 됐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그룹이 직무적성검사를 비대면으로 전환한 사례는 대표적인 변화로 꼽힌다. 비대면 채용에 나선 여러 기업은 언택트 채용 효율성을 강조한다. 수많은 지원자를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평가할 수 있어 팬데믹 이후에도 활용될 것이라는 평가다. 디지털을 활용한 비대면 업무 방식, 물리적 공간 거리 두기 등도 코로나 사피엔스가 적응해야 할 변화다.

향후 성과 평가는 더 엄격해질 가능성이 높다. 상사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채근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최근 구글 성과 평가 시스템인 ‘OKR(Objective and Key Results)’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었다. 국내 기업이 많이 쓰는 성과관리지표 KPI(핵심성과지표)는 주로 연 단위 평가였다. OKR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분기 단위로 업무를 평가한다. 근태관리가 어려운 만큼 믿고 맡기되 성과 평가를 더 촘촘하게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인류, 뉴노멀 찾는 여정에 돌입

▷‘비대면 스마트폰 인간’ 더욱 진화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KPIA) 소장은 ‘코로나 사피엔스 시대’를 좀 더 거시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코로나19로 지난 40년간 자본주의 문명을 떠받쳐온 기본 구조가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3가지 포인트는 ‘산업의 지구화’ ‘생활의 도시화’ ‘가치의 금융화’다. 산업의 지구화는 공급망의 전 세계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중국이 재료를 공급하지 않으면 미국 화장실용 휴지가 바닥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처럼 글로벌 가치사슬은 매우 촘촘해졌다.

생활의 도시화는 단순히 도시가 커졌다는 게 아니라 글로벌 거대 도시끼리 긴밀하게 네트워크를 맺는 걸 말한다. 홍콩과 가까운 도시는 중국 농촌이 아니라 뉴욕이라는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가치의 금융화는 산업활동이 모두 금융자산으로 바뀌어 계산되는 현대 자본주의 원리를 언급한 것이다. 홍 소장은 “이 같은 3가지 기본 구조가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과 맞물려 코로나19 사태를 부추겼다”며 “그러나 코로나19로 이 같은 구조가 깨져가고 있고, 늘 그랬던 것처럼(as usual) 과거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단정했다.

“코로나 사피엔스 시대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첫째는 사회적 방역 시스템이다. 건강이나 보건은 이제 개인 차원 문제가 아니다. 보건행정을 뛰어넘어 고용까지 사회적 방역이 필요하다. 둘째, 경제활동을 시장에만 의존한다는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 고용보장제 등 정부 주도 고용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

그는 아울러 “소비가 미덕인 문명은 현대사회뿐”이라며 “에너지를 줄이고 인간과 자연과 사회가 모든 좋은 방향으로 경제를 전환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 재편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폴 로디시나 AT커니 명예회장은 “고립화는 제조업의 상호 의존 시스템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원격근무가 일반화하며 5G, 전자상거래, 원격의료, 온라인 학습 등의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위기와 거리 두기는 인류의 혁신과 창의성을 자극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명순영·강승태·김기진·반진욱·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6호 (2020.07.08~07.1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07-10 13:23:4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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