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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1000일 밤의 기다림, 밀레 에 우나 노테
2021-04-05 14:05:19 

중세 시대 프랑스의 요리사들은 시큼한 포도즙이나 식초를 요리에 넣어 신맛을 강조하는 것을 좋아했던 반면, 이탈리아의 요리사들은 꿀이나 설탕, 과일을 넣어 단맛을 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파리의 귀족들은 음식에 맞춰 인근 샴페인이나 루아르에서 생산되는 산도 높은 화이트 와인을 즐겨 마셨고, 이탈리아의 영주들은 달콤한 와인들을 즐겨 마셨다. 이탈리아의 스위트 와인을 대표하는 생산지역은 베네치아가 위치한 베네토 지역과 남쪽의 시칠리아 섬이다. 해외의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북서부 토리노 인근에서 생산되는 바롤로와 피렌체 인근에서 나오는 브루넬로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이 두 지역이 시장에 등장한 것은 19세기 무렵으로 비교적 최근이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내수 시장에서는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는 베네토와 시칠리아로 이탈리아 내수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들이다. 베네토에서 가장 유명한 스위트 와인은 레치오토로 포도를 수확한 후 60일 정도 건조한 다음에 만드는 고급 와인이다. 반면 시칠리아에서 생산되는 스위트 와인은 마르살라라고 불리는 일종의 강화 와인이다. 강화 와인이란 와인의 발효가 끝나기 전, 즉 포도즙의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변화되기 전에 순수한 알코올이나 브랜디를 넣어 의도적으로 발효를 멈춘 와인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포도에 소주와 설탕을 넣어서 만드는 와인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렇게 하면 알코올 도수가 높고 단맛이 많은 와인이 만들어진다. 강화 와인들은 쉽게 만들 수 있으나 레치오토 같이 자연적인 방식으로 만든 스위트 와인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편이다.

강화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어서 항해에 적합하다는 점이다. 덕분에 오랜 시간 항해를 해야 하는 선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특히 유럽 와인의 가장 큰 시장이었던 영국이 프랑스와의 오랜 전쟁으로 와인을 공급받기 어려웠던 시대적 배경을 타고 붐을 이루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강화 와인들은 전쟁이 끝나며 수요가 크게 줄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달콤한 와인을 찾는 사람들은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최근에는 마르살라가 와인 자체로 음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디저트 요리에 사용된다. 마르살라가 생산되는 시칠리아 섬은 유럽의 어떤 와인 생산지보다 다양한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다. 온난한 기후를 가진 포도밭이 있는가 하면, 고도 3300m에 이르는 에트나 산에 위치한 포도밭은 유럽의 어느 생산지만큼이나 서늘하다. 에트나 산의 어느 방향에 포도밭이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와인 재배 조건이 만들어진다.

좋은 자연 조건과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시칠리아 와인이 유럽의 와인 시장을 정복할 수도 있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시장을 정복하기는커녕 오랫동안 제대로 된 고급 와인조차 생산하지도 못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된 시칠리아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은 이곳의 와인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동안 시칠리아의 와인은 주로 대량 생산되어 시장에 값싸게 공급되거나, 시칠리아만큼 따뜻하지 못한 이탈리아 북쪽의 포도원에서 만든 와인에 블렌딩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990년 전후로 시칠리아의 젊은 양조가 3명은 ‘사시카이아’로 유명한 컨설턴트 지아코모 타키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세계적으로 검증 받은 포도인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를 시칠리아의 토착 품종인 네로 다볼라와 블렌딩하기로 결심하였다. ‘돈나푸가타’의 창업자인 지아코모 랄로, ‘플라네타’를 설립한 디에고 플라네타 그리고 ‘타스카 달메리타’의 루치오 타스카 달메리타가 바로 그들이다. 이 새로운 시칠리아 와인들의 편안하지만 독특한 맛에 세계의 애호가들이 금세 열광하였다. 지아코모 타키스는 뛰어난 양조가였으나 큰 안목을 지닌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는 시칠리아 토착 포도들이 매우 뛰어나긴 하지만 해외의 소비자들에게는 아직 낯설다고 생각하였다. 이미 세계적으로 익숙한 포도들과 시칠리아의 토착 포도를 블렌딩하여 와인을 만들면 해외의 소비자들이 맛에 점차 익숙해지는 동시에 시칠리아 와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일단 시칠리아 와인이 알려지게 되면 토착 품종으로만 만든 와인도 세계에서 팔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생각은 옳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이탈리아 와인 중 하나인 돈나푸가타의 ‘앙겔리’는 토착품종인 네로 다볼라와 프랑스 품종인 메를로를 블렌딩한 와인이다. 이 와인의 대중적인 성공 덕분에 네로 다볼라만으로 만드는 최고급 와인인 ‘밀레 에 우나 노테(Mille e Una Notte)’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했다.


밀레 에 우나 노테는 천일야화에서 의미하는 바로 1000일 밤을 의미한다. 와인이 만들어지는 데에 필요한 길고 긴 밤들을 상징한다. 오랜 시간 숙성한 밀레 에 우나 노테는 깊은 초콜릿 향을 내지만, 와인을 만든 지 몇 년 안 된 어린 와인은 조금 풋풋함이 느껴지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와인의 르네상스를 기다려온 시칠리아 사람들의 인내를 생각하면 셀러 속에 보관하는 몇 년은 그저 찰나처럼 느껴진다.

[이민우 와인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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